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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아무 것도 안했다라는. ‘Did nothing’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SH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문구를 고르면서 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를 이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고민해봤어요. 아무래도 하루에 제가 해야되는 일이 많아서인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면서 평일에는 10시부터 7시까지 회사 업무를 하고, 마치고 난 이후에는 오빠(남편)과 사업 이야기를 하고, 새벽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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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쁜데 아무 것도 안하려고 마음 먹는 날이 있어요?
SH
정말 아무 것도 안하는 날은 아니고, 가끔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날’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렇게 ‘To do list’가 없는 날은 제게 주어진 선물 같아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요. 그게 저에게는 '아무 것도 안한 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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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희'가 쉬는 날이군요. 그런 날에 뭐해요?
SH
그런 날이 작년 추석 때 오랜만에 주어진 거예요! 최근 2년 동안요. 그래서 기억이 나요. 그 해방감이 너무 좋았거든요. 너무 신나서 서촌 가서 와인 마시고, 하루는 책이랑 노트 들고 산책하고 그랬어요.
Today I did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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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작년 추석이요? 열심히 사는 건 알았지만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꾸준히 달릴 수 있으려면 분명히 하루라는 타임라인 속에서도 환기하는 구간이 있을 것 같아요.
SH
보통 오빠랑 11시 전까지 서로 이야기할 부분을 끝내고 밤 11시부터 새벽까지는 거의 제 시간을 보내요. 그럼 아무도 절 방해하지 않으니까, 그때는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조명을 켜놓고 책상에 앉아서 끄적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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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가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리곤 하는 집 안에 마련된 작업실이 그 공간이죠?
SH
네. 결혼을 했어도, 서로 각자 그 공간은 청소도 따로하고, 꾸미는 것도 각자 하고요. 뭘 사서 놓든 터치도 안 하기로 했거든요. 그랬더니 작업 공간 자체는 좀 그냥 진짜 온전하게 집중하기 좋게 세팅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걸로 많이 채워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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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꾸미면서 고려했던 기준이나 취향 같은 게 있다면요?
SH
음…오히려 그 부분을 지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집 인테리어를 하얗게 한 부분도 어떻게 보면 오빠 취향을 반영하기도 했지만, 제가 많이 버린 부분도 있어요. 이전 자취하던 집에서 나오면서 알록달록한 아이템들도 좀 덜어냈고요. 함께 사는 사람이 생기다 보니 장기적으로 아이템 하나하나 더 신중하게 오래 보고 괜찮은 걸 고르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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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이와 남편이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의 디테일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심플하지만 살짝 드러나는 아기자기한 소녀 감성 같은 게 있어서 사랑스러운?
SH
(으흐흐) 보다 보면 되게 스스로는 진짜 그냥 깔끔한 걸 좋아하고 싶은데 본체는 그러지 못한. 도넛바이닐샵이 믹스된 게 있죠. 그 깔끔하게 가고 싶다가도 내 마음 속에 항상 귀여운 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까 그게 조금씩 제품에도 반영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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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이라는 아이템이 사실 사람들의 그런 마음? 욕망(하하) 을 표출하기 좋은 아이템이니까 그런 면에서 되게 좋은 것 같아요.
SH
구석에...아무도 모르게 슬쩍 보이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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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소이는 지금 소이를 제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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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저는 글쎄요. 요즘은 백팩? 카오스 그 자체랄까. 원래 에코백을 정말 좋아했는데, 요새는 지갑만 들고 나가야할 때도 백팩을 챙겨야 안정감이 생겨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할 것 같은 상태. 하지만 막상 찾으면 또 뭔가 놓고나와서 없는 (흐흐) 그런 상태.
SH
그럼 저는 맥북인 거 같아요. 쉴 때도 노트북을 쓴다고 하면 다들 놀라시는데, 저는 사실 사실 쉬는 거거든요. 오히려 이것저것 끄적끄적 대고, 만드는 게 재밌어요. 콘텐츠 만드는 것도 사실 쉬는 개념으로 느껴져서요. 여행 다닐 때도 안 들고 간 적이 없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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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저는 쉴 때는 아예 아이폰도 던져놓고 안보는데. 신기하다.
SH
저는 솔직히 말하면 에너지를 모든 일에 100%를 절대 안 써서 가능한 것 같아요.
전 콘텐츠 만들고 이런 것도 재미있어서 하는 거고, 애써서 하고 있지 않아서 가능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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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하다...근데 좋아하는 일에 어떻게 100% 에너지를 안 써요? 지금은 몇 프로 쓰고있어요?(의심의 눈초리)
SH
전 콘텐츠 만들고 이런 것도 재미있어서 하는 거고, 애써서 하고 있지 않아서 가능한 것 같아요. 왜냐면 너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모든 것에서.
SH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말자는 건 아니예요. 요즘 드는 생각이 진짜 하루하루가 쌓여서 진짜 1년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스스로 상상하는 것처럼 잘 살고 싶으면 하루를 더 잘 보내야겠다는 강박이 최근 들어 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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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이를테면 '아 저 어른처럼 늙고싶다'거나.
SH
음...주변에서 찾자면 예전에 함께 일했던 디자인 에이전시 대표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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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오디티에서 앱 기획할 때 같이 일했었죠?
(*소이와 케이트는 스페이스오디티에서 만났다.)
SH
네. 일단 20년 동안 하나의 일을 하면서 회사를 만들어간 것도 대단하지만, 돈이나 경험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완성형’임에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넥스트 레벨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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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마다 고민하는 '넥스트 레벨'이 다르죠.
SH
그쵸. 모두의 넥스트 레벨이 다르죠. 예를 들면 내가 진짜 돈이 없고 가난하다면당장 오늘 뭘 먹어야할지 '나'만 생각하지만,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주변을 생각하게 되는 거고.
SH
도시 한복판에 공원 하나를 만들고 싶으시다는 거예요. 젊은 친구이 쉴 수 있는 숲을 하나 만들어주면 의미가 있지 않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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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 멋진 생각을 가진 어른이다.
SH
그쵸. 아,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네. 사람이 진짜 모든 걸 가졌을 때 오히려 다시 0으로 돌아가겠구나. 이걸 알고나니까 저도 저런 걸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쨌든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P.P
다 가져보고 노력해서 얻어보면 또 0이 되게 중요하다는 걸 내가 알 수 있겠죠?
SH
맞아요. 그래서 그걸 느껴보고 싶다 생각해서 오히려 두 가지 자세가 되버려요. 하나는 되게 무기력하기도 해요..그런 얘기를 들으면 결국 돈이 아무리 많아도 갖고 싶은 게 없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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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옷 진짜 많이 입어본 사람들이 사고싶은 옷 없다고 하는 거 알죠? 그러면 도대체 돈을 왜 버는 거야?
SH
그런 분들 보면, 속으로 '난 아닐 것 같은데' 이런 생각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도 좀 그렇게 되고 싶어요. 나도 진짜 내가 몰두해서 만들고 쌓고 판도 키워보고 돈도 많이 벌어보고 그 다음에 또 어떻게 영향력 있게 잘 쓰지, 어떻게 더 나눠주지 이런 생각도 하고 싶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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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가 원하는 '잘'사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SH
예를 들면 한 끼를 먹어도 좀 더 좋은 재료로 만든 것. 운동을 해도 좋은 뷰가 있는 필라테스 학원에서 운동을 한다던지. 진짜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다던지. 일상적인 것들을 좋은 것으로 이루는? 시간적인 여유,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긍정적으로 하루를 꾸려갈 수 있는 그런 것. 그런 걸 가지려면 지금은 좀 더 열심히 해야하는 대가 아닌가. 왜냐면 너무 놀기 좋은 세상이라, 그냥 하루하루 너무 쉽게 놀고, 먹고, 릴스도 하루종일 볼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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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고양이랑 누워서 릴스 보면 한 두시간은 뚝딱이에요.
SH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 자극적인 콘텐츠에 시간을 뺏기고 나면 그 찝찝한 기분이 되게 싫은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가능한 아프고 싶지 않고 스스로 강박적으로 컨디션을 챙기려고 해요. 몸 상태가 나빠지면 기분도 쉽게 안좋아지고, 그렇게 체력이 떨어지면 하는 일에 다 영향을 받으니까 스스로를 잘 지키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거죠.
SH
그러다 보니까 릴스도 누워서 안 보려고해요. 남편이 워낙 그런 걸 잘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나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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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라는 책 읽고 있는데요. 우리에게 주어진 죽음의 문턱을 직면했을 때가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과정에 대해 빠르게 인지하고 준비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대요. 어떻게 보면 잘 살고 싶다는 욕구도 맞닿아있는 것 같아요.
SH
맞아요. 이 티셔츠 입고 하고 싶은 하루에 대해서 물었을 때 떠오른 건 그런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서 바람 소리 들으면서, 노래 듣고 잠깐 낮잠도 자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산책하는 그런 틈이 있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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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근데 이 티셔츠 자체가 부담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걸 자주 입고, 뭘 많이 하더라도 환기하고, 잠옷처럼 입어도 되고요.
𝘼𝙗𝙤𝙪𝙩 𝙋𝙧𝙞𝙣𝙩 𝙋𝙧𝙚𝙨𝙚𝙣𝙩 𝙄𝙣𝙩𝙚𝙧𝙫𝙞𝙚𝙬
자기표현의 수단로서 티셔츠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가훈,교훈, 좌우명 같은 것들은 시대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움직이는 문장, 혹은 요즘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를 이끄는 문장과 말, 단어는 존재합니다.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이며, 한 권의 책이고, 노래입니다. 티셔츠이기도 하죠. 그들의 지금 이 순간을 프린팅하고,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